[행사] 20년 9월 스몰토크 후기

9월 26일 온라인 스몰토크 후기


준: “온라인으로 처음 모임에 참여했는데 그간 미투, 페미니즘에 대해서 못했던 밀린 얘기들을 시원하게 몰아서 한 기분이었어요! 앞으로 더 자주 모임을 열면 좋을 것 같아요” *함께 나눈 텍스트와 이야기

어진: 문화원에서 빌린 책인데, 읽으면서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와 한국에 있는 엄마 생각이 많이 났어요. 아이를 한번도 낳아본 적이 없는 할머니를 묘사한 손녀의 시점과, 임신을 한 엄마를 바라보는 어린 딸의 시점과 묘사가 뭔가 모르게 마음을 울렸어요. “저고리를 벗은 할머니의 겨드랑이에서는 시큼한 땀내가 풍기고 땀에 젖은 풍성한 한 줌의 털이 할머니가 머리를 문지를 때마다 어깨를 간질였다. 내 머리를 다 감기고 나자 할머니는 돌아서서 치마를 벗었다. 그리고 미끄러운 돌에 기우뚱 위태롭게 발을 내디디며 물 속으로 들어왔다. 할머니의 벗은 몸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시들고 메마른, 팔다리와는 달리 속살은 눈부시게 희고 특히 어머니처럼 다산의 흉한 주름이 없는 배는 둥글고 풍요했다. 할머니의 거뭇한 가랑이 사이에서 거품을 내던 물은 조금 아래쪽에 선 내 허리를 휘감고 흘러갔다. 나는 개울의 가운데 감깐 망연해져 서 있는 할머니에게서 문득 흩날리는 눈발에 꽃잎처럼 묻어들어오던 날의 놀라움을 생생하게 되살렸다. 할머니는 아름다웠다. 내 눈길을 느낀 할머니는 잇몸을 내보이며 흐흐 웃었다. 햇빛 아래 입을 벌리고 웃는 할머니는 마른 꽃잎 같았다. 봉지 봉지 꽃봉지. 할머니는 정말 새까맣게 여문 씨앗이 배게 들어찬 주머니와도 같았다. p. 39-40”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수채에 쭈그리고 앉아 으윽으윽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임신의 징후였다. 이제 제발 동생을 그만 낳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처음으로 여자의 동물적인 삶에 대해 동정했다. 어머니의 구역질은 비통하고 처절했다. 또 아이를 낳게 된다면 어머니는 죽게 될 것이다. p. 91”

릴리: 제가 독일인 친구에게 ‘82년생 김지영’을 선물했을때, 그 친구가 다 읽고 저에게 선물해주었던 책입니다. 아직 제 독일어가 미숙해서 정독하지는 못했는데, 읽은 부분중에서 공유하고 싶은 부분을 적어 봤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대로 독일어를 한국어로 번역해봤는데, 혹시 수정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자유롭게 수정해주세요:)) ¨Würde die Menschheit dieselben Anstrengungen in die Raumfahrt stecken wie die Redaktionen von Frauenzeitschiriften in BlowjobßRatgeber, können wir längst zum Kaffeetrinken auf den Mars.” (인간이 여성잡지에서 오랄섹스의 팁을 적는데 드리는 노력만큼 우주비행에 노력을 기울였다면, 우리는 적어도 화성에서 커피를 마실수 있었을 것이다). “Aber feministische Weltherrschaft ist keine Option. Erstens, weil Weltherrschaft generell keine Option ist, und zweitens, weil es um die Abschaffung von Herrschaft geht und nicht um ihre Umkehr.” (여성의 세상지배는 일어날수 없다. 첫번째로 일단 세상지배를 할수 있는 위치가 성립되지 않고, 두번째로는 여성지배하는 것이 남성을 지배하려는, 즉, 권력관계를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남성과 같은 동등한 위치에 있으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Das ‘Untenrum’ ist der Sex und das ‘Obenrum’ unser Verständnis von uns selbst und den anderen- und beides gehört zusammen. Untenrum frei zu sein bedeutet Freiheit im sexuelle Sinne. Es bedeutet zu wissen, was uns gefällt und was wir uns wünschen, und es bedeutet, uns das Begehren zu erlauben, das in uns ist- immer so weit, dass die Freiheit der anderen respektiert bleibt. Obenrum frei zu sein bedeutet Freiheit im politischen Sinne, frei von einengenden Rollenbildern, Normen und Mythen.” (‘하위’은 섹스를 가르키며, ‘상위’는 우리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상위와 하위는 서로 연결되어있다. ‘하위의 자유’는 섹슈얼한 의미의 자유를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인지하고, 우리의 열망을 허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 자유는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의 자유이다. ‘상위의 자유’는 정치적인 자유를 의미한다. 우리가 사회적 롤모델과 규범, 그리고 미신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을 의미한다.)

어진: 릴리님의 책과 이야기를 들으면서 추천하고 싶었던 책 하리타의 “오늘부터 내 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어”

무아: 저는 최근 봤던 루스 긴즈버그에 관한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과 닳고 닳도록 되새겼던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책의 구절을 공유했습니다. 해당 영화를 여러 관점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이 날 가장 와닿았던 장면은 성차별이 합법이던 숨막히는 시대도, 루스 긴즈버그의 비범한 면모도 아닌 여러 세대의 페미니즘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극중에서 루스 긴즈버그는 그의 전 세대에 성차별적 법에 도전했던 변호인인 존경하는 도로시 캐니언을 딸과 함께 만나러 갑니다. 그가 존경하던 도로시 캐니언은 예상과는 다르게 패배적인 태도로 오랜 시간 이 세상에 도전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고 나오는 길에 루스 긴즈버그와 그의 딸 제인은 길에서 성희롱을 하는 무례한 남성들을 만나는데, 그냥 무시하자는 루스의 말에 제인은 이런 상황을 묵인해서는 안 된다며 그 남성들에게 욕을 시원하게 날려줍니다. 제인은 학교 대신 시위에 가고, 사안에 진심으로 분노하며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말도 서슴지 않는데, 그런 제인을 보며 루스는 윤리를 이야기하며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의견 차에도 불구하고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는 셋이 뜻을 모아 루스의 재판을 돕게 되죠. 거침없이 참아왔던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과 이성만이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 간의 갈등. 여러 번의 좌절로 지쳐버린 선배들의 노파심과 ‘나라고 그 시도 안 해봤겠니?’하는 마음이 섞인 톡 쏘는 말들. 세대 말고도 이 영화에서는 문화가 변해야 법이 변한다는 사람들과 법이 먼저 변해야 문화의 변화가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들의 갈등도 나오고, 학계에 몸담은 사람과 더 현실에 가까운 곳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 간의 대화도 나옵니다. 성평등을 향한다는 점에서 큰 방향은 같을 지라도 어느 길을 통해 어떻게 갈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런 사람을 만날 때면 상황을 대립으로 받아들이고 서로를 설득하려하고 답답해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생각이 와닿는 것 같습니다. 모든 배역이 루스 긴즈버그와 같은 사람이었고 아무 갈등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상상해보면 영화가 부드럽게 진행되더라도 끔찍한 결말로 이어졌을 것 같고요. 루스 긴즈버그가 아닌 그 어느 배역이라도요. 모두가 동의하는 하나의 회색으로 전부 색칠된 그림보다는 음영이 있는 그림이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와 관련해서 인상깊었던 <나쁜 페미니스트>의 구절이 떠올라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페미니즘을 소문자 복수명사라고 정의합니다. 하나의 원론적인 페미니즘보다는 다양한 페미니즘으로서 정의한 것이지요. 이 책에서 인상깊었던 구절을 몇 옮기며 글을 줄입니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선택이기도 하다. 어떤 여성이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지 않다면 그 역시 그녀의 권리이기에 존중한다. 나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여성들이 평등과 자유를 쟁취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타문화권 여성들에게 자유와 평등의 모범답안을 제시할 입장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 16p “모두 천편일률적인 페미니즘을 믿어야 할 필요도 없다. 각자 지지하는 페미니즘을 존중하고 우리 사이의 균열을 최소화하는데 충분히 신경을 쓰기만 하면 된다” -18p.